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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메이저리그 ‘자동 고의사구’ 도입에 관한 단상
    카테고리 없음 2017. 2.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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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소위 자동 고의사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전까지는 투수가 포수에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 4개를 모두 던져야만 고의사구 행위가 완성된 것으로 인정했고, 타석의 상대팀 타자 역시 4개의 볼을 지켜본 이후에야 1루로 갈 수 있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 시즌부터는 덕아웃에서 심판에게 고의사구에 대한 의사표시를 보내는 것 만으로 고의사구를 인정, 투수의 투구행위를 생략한 채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그대로 1루로 보내도록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노조가 승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방안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역시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명분이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는 평균 2.6경기당 하나 꼴로 총 932개의 고의사구가 나왔다. 올 시즌 자동 고의사구를 시행할 경우 고의사구 하나당 1분 정도의 경기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엄밀히 놓고 보면 경기시간 단축효과는 좀 미미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무의미한 4개의 공을 던지는 행위 자체를 촌스럽고 케케묵은 행위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번 규정변경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결정을 지켜보며 세계 야구의 본산이랄 수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데 대해 다소 놀라기도 했고, 의외의 결정이라는 느낌이다.


    야구경기 중에 발생하는 고의사구라는 행위와 상황이 그 동안 야구 경기에서 만들어낸 숱한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생각하면 메이저리그가 너무 쉽게 야구가 지닌 매우 소중한 콘텐츠적 요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내셔널리그 경기에서 한 점을 이기고 있는 팀이 9회말 마지막 수비를 펼치고 있고, 아웃카운트는 투아웃에 루상에는 두 명의 주자들이 1,2루에 나가 있다. 현재 타석에는 타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챤스에 강하고 일발 장타가 있는 타자가 들어서 있다. 다음 타자는 타율이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수다.


    단타를 맞으면 동점, 2루타 이상 장타를 맞으면 그대로 역전 끝내기를 허용할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덕아웃에서는 당연히 마운드 위의 마무리 투수에게 현재 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다음 타자인 상대팀 투수를 상대로 승부하라는 사인을 낸다.


    하지만 마운드 위의 투수의 머릿속은 순간 복잡해 진다. 현재 타석의 타자를 충분히 잡아낼 자신이 있고, 그를 잡아내면서 승리를 지켜내고 있는 자존심이 발동을 한 것.


    하지만 어쨌든 덕아웃의 작전지시를 따르기로 하고 고의사구를 시행하고 있는데 3볼 노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갑자기 타자가 두 번이나 헛스윙을 한다. 순식간에 볼카운트는 풀카운트가 됐고,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 투수는 일어서 있는 포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진다. 화들짝 놀란 포수는 공을 잡기 위해 미트를 뻗어 보지만 이미 공은 포수 뒤로 빠져 백네트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고, 1,2루에 있던 주자들은 2,3루로 이동했다.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정신차린 투수가 타자를 거르고 다음 타자인 상대 투수와 승부를 벌여 그대로 승리를 지켜냈을 수도 있고, 오기가 발동해 현재의 타자와 정면승부를 펼치다 역전 끝내기 안타를 맞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로 든 것은 고의사구 행위가 일어나는 1-2분 사이에 선수들과 덕아웃에서는 그야말로 오만가지 생각과 복잡다단한 심리변화가 발생하고 그런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경기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말이다.


    앞서 예로든 상황에서 자동 고의사구가 적용됐다면 투수의 머릿속이 복잡해 질 가능성도 타석의 주자가 일부러 헛스윙을 해서 투수를 현혹하려 하는 생각을 해볼 가능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야구해설가 고 하일성 선생이 살아생전에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야구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고의사구도 그렇게 알 수 없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상대팀 투수가 앞 타자에게 고의사구를 던지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다음 타석에 들어서서 역전 홈런을 날린 스토리는 야구에서 숱하다. 또 투수가 고의사구를 잘못 던지거나 타자가 고의사구 상황에서 덕아웃의 사인을 잘못 보고 몸을 날려 번트를 시도하거나 배트를 휘둘러 경기 상황이 뒤죽박죽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경기를 치르는 팀들 입장에서는 피가 마를 노릇이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야구가 아니면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는 스포츠는 없다.


    경기시간을 단축한다는 미명하에 도입하는 자동 고의사구라고는 하나 경기시간 1-2분 단축을 위해 야구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야구팬들에게 중요한 콘텐츠 하나를 빼앗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메이저리그는 그렇다고 치고 아직 KBO리그에서는 자동 고의사구 도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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