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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냐 마라토너 에루페 귀화, 어떻게 봐야 할까
    카테고리 없음 2015. 4. 1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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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육상계가 2016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을 겨냥해 케냐 출신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의 귀화를 추진 중이다. 에루페는 지난 7일 국내 실업팀인 충남체육회와 계약을 체결했다. 


    에루페는 지난 2011년 10월 생애 두 번째 풀코스 도전이자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9분 23초로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이듬해인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역대 국내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 5분 37초로 우승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달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도 2시간 6분 11초로 우승한 에루페는 “한국에 귀화해서 리우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에루페와의 심층면담과 내부 회의를 거쳐 그의 귀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에루페는 케냐 국가대표로 뽑힌 경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1년 후부터 한국 대표로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 나갈 수 있다. 그의 국내 귀화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내년 8월에 열리는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 


    올림픽 마라톤에는 국가별로 출전 쿼터가 정해져 있는 데다 특급 선수들이 잘 나서지 않기 때문에 세계최고기록 수준의 기록이 아니어도 메달 획득이 가능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승한 스티븐 키프로티치(우간다)의 기록이 2시간 8분 1초였고, 그 이전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들의 기록 역시 세계기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2시간 5분대의 최고기록을 가진 에루페라면 내년 리우 올림픽 메달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국내 육상계의 분석이다.


    이로써 한국 육상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외국인 출신의 선수가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서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실 바레인, 카타르와 같은 중동국가들은 이미 아프리카 출신 육상 선수들에게 거금을 안겨가며 자국으로 귀화시켜 주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는 문제만큼은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 자격을 주는데 상당히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이번 에루페의 귀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에루페의 귀화는 기정사실처럼 보이고, 그가 국가대표로서 내년 리우 올림픽에 나설 것도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가 실제로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 때 그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여 줄 우리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에루페의 귀화 추진은 한국 육상엔 더 없는 기회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올림픽 메달도 메달이지만 에루페가 귀화함으로써 국내 마라토너들에게 줄 수 있는 자극과 그에 따른 시너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봉주 은퇴 이후 이렇다 할 기대주가 나타나지 않는 한국 마라톤의 현실에서 마라톤 세계기록(2시간 2분 57초)에 근접한 기록을 가진 세계적인 마라토너 에루페의 존재는 상당한 무게감을 갖는다. 국내 마라토너들이 그의 옆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고, 동기부여도 충분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가치만으로도 에루페의 귀화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다른 종목이기는 하나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대표팀 전력 향상을 위해 당시 K리그에서 뛰고 있던 외국인 선수 한 명을 귀화시키려 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대표팀의 사령탑이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귀화시킬 선수의 조건에 대해 국내 선수들보다 월등히 기량이 뛰어난 선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 정도로 수준이 월등한 선수가 아니라면 대표팀의 전체적인 팀워크에 줄 수 있는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대표팀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표팀에 외국 출신 귀화 선수가 엔트리에 포함되는 일은 없었다. 


    이와 같은 사례에 비추어 보면 에루페는 일단 실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한국 육상계가 탐을 낼 만큼 월등한 선수다. 


    게다가 에루페가 전혀 한국과 인연이 없는 선수도 아니다. 그가 세계적인 마라토너로서 부상한 이후 여러 에이전시에서 거금을 제시하면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런 제안들을 모두 물리치고 한국으로의 귀화하겠다는 의사를 굳혔다. 이는 지난 2007년 사제의 인연을 맺은 이후 자신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켜 준 백석대학교 스포츠과학부 오창석 교수와의 의리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인 오 교수가 무명이었던 에루페를 발굴해 오늘날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분명 에루페는 마라톤 선수로서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볼 수 있는 요소도 지닌 선수다. 


    한국 스포츠계는 세계 어느 나라 스포츠계보다 선수의 혈통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 구성 자체가 단일 민족으로 혈연에 대한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내거나 좋은 성적을 거둬도 그 성과를 온전히 한국인이 거둔 성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현재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다문화 가정이 일반화 되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인구 구성 역시 다문화화 되어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 스포츠계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에 대한 시각도 이제는 변화해야 할 시점에 왔다. 


    특히 올림픽이라는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작용하는 대회에 에루페와 같은 귀화 선수가 출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메달을 위해 외국 선수를 돈으로 사온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월등한 기량을 지닌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한국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한국인 선수들의 기량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한국 스포츠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이는 분명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면이 충분하다. 


    에루페의 귀화 추진은 ‘국민정서론’을 앞세운 섣부른 비판보다는 진지한 관심과 열린 시각이 필요한 사안이다.


    <본 칼럼은 인터넷 뉴스 '데일리안'에 송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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