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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 아시안컵 우승 여부보다 기대되는 것카테고리 없음 2015. 1. 30. 00:11반응형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오는 31일 오후 개최국 호주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놓고 한 판 승부를 펼친다.
실로 27년 만의 결승 진출이다. 만약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55년 만의 우승이다.
슈틸리케호가 호주로 출항했을 때만 하더라도 우승은 고사하고 결승 진출도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K리그를 대표하는 두 공격수 이동국과 김신욱이 최종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고, 슈틸리케 감독이 마지막 순간까지 합류 가능성을 타진했던 박주영 역시 끝내 슈틸리케 감독의 낙점을 받는 데 실패했다. 물론 수비진의 불안정도 여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조별예선에서 호주를 물리치고 A조 1위로 조별예선을 통과해 8강전과 준결승을 모두 잡아내며 5전 전승의 성적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특히 5차례 승리를 거두는 동안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주요 베팅 업체의 예측에 따르면 호주가 한국을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조별예선에서 한국에 패했던 호주하고는 완전히 다른 호주가 결승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예측대로 호주가 이길 수도 있고, 반대로 한국이 다시 한 번 도박사들의 예측을 비웃어 주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에 관계 없이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당초 설정했던 우승이라는 목표에 근접해 있는 현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이정협, 한교원 등과 같은 새 얼굴을 발굴하고 발탁해서 대표팀에서 당당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키워냈을 뿐만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 자신의 축구철학에 따라 대표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실천했으며, 대표팀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팀으로 묶어냈다는 사실이 출범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슈틸리케호에 대해 ‘성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는 이유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대표팀과 호주와의 결승전을 승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한편, 결과에 관계 없이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안컵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구상한 로드맵에 따라 대표팀과 한국 축구를 변모시켜 나갈 것이다. 이 역시 무척이나 기대 되는 여정이고, 그 여정을 지켜보는 축구팬들은 무척이나 즐거울 것이다.
대표팀에 관한 한 정말 오랜만에 밝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셈이다.
한편으로 보면 슈틸리케 감독과 슈틸리케호의 성공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전진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쳐온 한국 축구계의 부끄러운 모습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사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이전 보다 훨씬 넓게 벌어진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실감하며 초라한 성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을 때 소위 ‘엔트의리’ 논란을 빚었던 홍명보 전 감독에 대한 경질 여론도 높았지만 그 반면 계속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홍 전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서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홍 전 감독의 사퇴와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은 한국 축구에 참으로 잘 된 일이 됐다.
홍명보 전 감독의 사퇴 이후 그 후임으로 국내 지도자와 외국인 지도자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지에 대해 논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던 제법 이름값 높은 외국인 감독들 가운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지도자를 찾기 어려웠던 것도 외국인 지도자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됐던 이유였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 모든 의구심을 날리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끊임 없이 선수를 찾아 나섰다. K리그 클래식 경기뿐만 아니라 K리그 챌린지 경기도 마다하지 않고 광범위한 선수발굴 작업을 벌였고, 그 결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정협과 같은 선수를 발탁했고, 그 선수로 하여금 대표팀의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같은 결과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가 여러 면에서 선진화 됐다고 우리 축구계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산산조각 냈다.
우리 스스로는 발전하고 세련됐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선수 발굴이나 대표팀 전술 운용 등 여러 면에서 또 다른 모습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음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9위라는 한국 축구의 현 위치는 결코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이유가 있는 결과라는 사실, 즉 학연과 지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축구계 내부의 특유의 문화와 과거의 성과에 취해 세계 축구의 변화를 읽지 못했던 한국 축구계의 착각이 슈틸리케 감독의 성공으로 새삼 드러나게 된 셈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6일 이라크와의 준결승에서 승리,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직후 공식 인터뷰에서 “한국이 27년만에 결승에 진출해 상당한 의미가 있다”면서도 “우승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안컵 결승의 결과도 무척 기대가 되지만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노력하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그에 못지 않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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