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외국 언론 덕분에 국제망신 면했다
정부 개입 논란이 불거진 통합 체육회 정관 개정 문제가 결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점검을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2016년 체육분야 업무보고’에서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에게 “통합체육회 정관에 대해 IOC에 질의하자”고 제안했고, 김정행 체육회장은 이에 동의했다.
앞서 지난 11일 대한체육회는 서울올림픽파크텔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12차 통합추진위원회(위원장 이기흥) ①통합체육회 정관이 완성돼야 발기인 총회를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정관이 완성되지 않은 점, ②가맹경기단체 등급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 ③사무처 기구 및 직제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은 점을 들어 오는 15일로 예정된 통합체육회 발기인 총회 불참을 결정한바 있다.
하지만 이날 대한체육회와 정부의 합의로 오는 15일 발기인 총회는 파행의 위기를 넘겼다.
이날 김 차관이 제시한 대안은 발기인 총회 이후 법인 설립 등기를 위한 3주간의 법정시한(3월 27일) 내에 IOC에 통합체육회 정관(안)을 보내 사전 승인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후 IOC로부터 수정 요청이 오면 이를 반영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최종 승인한다는 것.
이에 따라 체육회 통합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걸림돌이 IOC의 점검 내지 심의를 통해 제거될 수 있게 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갈등이 표출되고 일단락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결국 한국 스포츠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음에도 이를 모른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체육회 통합을 추진하다 외국 인터넷 언론에 게재된 한 건의 짤막한 보도에 의해 재앙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관련된 이슈를 주로 다루는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어라운드 더 링스(AROUND THE RINGS)'는 지난 9일(한국시간) '한국의 올림픽위원회(NOC)가 자율성 논란에 휩싸일 것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정관을 변경하면서 IOC의 '정부 개입 금지'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어라운드 더 링스’는 "한국 정부가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선임하고 NOC의 예산 집행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IOC에서 KOC의 위상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보도가 나오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어라운드 더 링스’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데 급급했고, 체육회 통합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체육인들이 외국 언론에 근거 없이 무책임한 폭로를 한 것으로 몰아가면서 오는 15일로 예정된 발기인 총회를 강행하는 등 체육회 통합 밀어붙이기에 열중했다.
IOC가 각국 NOC가 정부에 의해 자율권을 지나치게 제한 받는 등 올림픽 헌장에 위배되는 규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13년 10월부터 각국 NOC가 정관을 제·개정할 때 사전에 IOC의 점검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대로 통합 체육회의 정관이 당사자들에 의해 합의가 이뤄졌다면 당연히 그 정관은 IOC의 점검을 받는 것이 맞는 절차였다. 대한체육회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먼저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았다면 애당초 불거지지도 않았을 갈등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체육계 스스로가 아닌 정부가 체육회 통합을 주도했고, 그것 조차도 정부 스스로 정한 시한에 쫓겨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이제 한국 스포츠는 쿠웨이트처럼 올림픽과 같은 IOC 주관 스포츠 이벤트에서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를 사용하고, 선수들도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아닌 ‘한국에서 온 선수들’로 명명된 집단에 속해 개인자격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식의 재앙은 피했다.
스포츠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느끼고 배우는 바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