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BL]여자농구 중계 작전타임 시간, 채널을 돌리고 싶은 이유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TV로 시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리모콘으로 다른 채널을 돌려보다가 다시 채널을 경기 중계 채널로 원위치 시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작전타임 시간이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KDB생명 2015-2016 여자프로농구 경기운영요령에 보면 작전타임은 전반전에 각 팀이 2차례씩, 그리고 후반전에 3차례씩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시청자들이나 경기장에서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관전하는 팬들은 총 10차례의 작전타임을 한 경기에서 만날 수 있다.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입장이 아닌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작전타임에 각팀 벤치에서 선수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는 지 알 수 있다는 것은 TV로 농구경기를 관전하는 상대적인 장점이다.
통상 4쿼터 40분에 달하는 경기시간 중에 각 팀 벤치에서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송사의 입장에서 벤치의 긴박한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이만한 장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작전타임 시간을 가리키는 버저가 울리는 순간 채널을 돌리곤 하는 이유는 대다수 팀의 감독들이 작전타임 시간에 작전지시를 하는 장면이 참으로 보기 민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통 감독들이 작전시간을 요청하는 경우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끌려가는 경기를 하거나 스코어 상으로 앞서나가다가 상대팀의 추격을 허용하는 순간 경기의 맥을 끊기 위한 경우일 때가 많다. 이런 경우 감독들은 선수 개인 또는 팀 전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해서 그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전지시를 내리게 된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감독들이 작전타임에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내리는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1분 정도의 시간 중 초반 20-30초는 앞선 경기 장면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지적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다시 코트에 들어갔을 대 어떤 작전을 펼칠 것인지를 지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작전지시를 내리는 감독들의 태도다. 앞선 경기 장면에서 선수들의 플레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지적하는 대목을 보다 보면 감독이 선수들을 어린 아이 나무라듯 하는 경우가 많다. 폭언을 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폭언에 가까운 질타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감독이 선수를 질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프로팀의 감독이 프로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내리는 모양새가 마치 고등학생 선수 나무라듯 질타하는 것은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재미있기 보다는 민망한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아닌 시청자들이 구체적으로 뭘 질타하는 지도 모르는 가운데 듣기 기분 나쁜 톤으로 선수를 질타하는 감독들의 목소리를 20-30초간 여과 없이 듣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우리나라 프로팀에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사제의 인연으로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감독이 배우는 입장의 선수에게 가르침을 주는 과정에서 꾸지람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엄연히 계약관계로 묶인 동업자 내지는 파트너다.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냉정하게 이와 같은 원칙에 입각한 관계설정을 기대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미디어에 노출되는 장면에 있어서 만큼은 프로 감독과 프로 선수의 관계가 품위 있게 보여져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선수들이 감독에게 제자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령상 성인이고 팬들을 거느린 프로 선수다.
만약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만의 스타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 선수를 감독이 어린아이 나무라듯 하는 장면을 본다면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그렇게 감독에게 질책 당하는 장면을 팬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마찬가지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감독과 선수만을 가지고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를 위해 어떤 내용의 커뮤니케이션이라도 이뤄져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면 한정된 작전 시간에 좀 거친 면이 있더라도 감독과 선수 간에 서로 이해하기 좋은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은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로 넘어간다. 굳이 작전타임 시간에 적전지시를 내리는 벤치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것이 합리적인 중계방식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문가인 중계 해설자가 작전지시 장면을 보고 시청자들에게 어떤 작전지시가 내려졌는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시청자가 경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그림과 소리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것이라면 작전타임 시간에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다른 것을 준비하고 기획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치어리더들이 펼치는 공연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앞선 경기 장면 중 멋진 골 장면이나 수비 장면을 다시 보여주거나 현장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벤트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각종 기록을 보여주거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퀴즈 이벤트 같은 것을 마련해도 좋을 것이다.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의 기획력이 발휘된다면 단순히 경기의 내용을 전달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농구경기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찾아내서 보여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 야구나 축구, 배구 등 다른 프로 스포츠 중계에서 시청자들을 위해 어떤 것들을 준비하는 지 벤치마킹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농구에서 작전타임은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의 입장에서 마케팅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방송사가 작전시간에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더욱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여자프로농구를 중계하는 방식은 큰 틀에서 보면 30여 년 전 농구대잔치 시절 중계방송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작전타임 시간 보기도 듣기도 민망한 작전지시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농구대잔치 시절과 같다.
하지만 이런 민망한 작전타임 시간을 TV로 중계하는 것은 농구중계방송의 품위와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예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 가운데 ‘파스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였는데 주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커뮤니케이션 장면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하지만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서 그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손님들이 그런 주방 내부의 살벌한 장면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을 때 그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프로스포츠는 상품이다. TV중계라면 고객들인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멋지고 좋은 것을 보여줘야 그 고객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