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FIFA, 러시아-카타르 월드컵 유치 비리 의혹 보고서 공개할까
국제축구연맹(FIFA) 차기 회장 선거에 도전하고 있는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얽힌 비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조사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FIFA는 앞서 미국 연방검사 출신인 가르시아 전 수석 조사관이 2018년 월드컵 개최지가 러시아로, 2022년 월드컵 개최지가 카타르로 선정되는 과정에 대한 비리의혹을 조사한 끝에 작성한 430쪽 분량의 보고서를 10분의 1분량으로 축소해 공개해 빈축을 샀다.
27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알리 왕자는 두바이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이클 가르시아 전 FIFA 윤리위원회 수석 조사관이 작성한 내부 조사 보고서를 즉각 공개하라. 보고서 공개는 FIFA가 지켜야 할 기본”이라며 “차기 회장 선거 후보자들과 대중은 FIFA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제 FIFA의 어두운 부분은 잘라내야만 한다”고 보고서의 온전한 공개를 촉구했다.
알리 왕자가 2018 러시아월드컵, 2022 카타르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 대한 비리의혹을 조사한 보고서를 공개하자고 촉구하고 나선 데는 내년 2월에 있을 FIFA 회장 선거와 관련,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력 차기 대권 후보였던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최근 제프 블래터 현 FIFA 회장과 함께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8년의 자격징계라는 중징계를 받아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됨에 따라 내년 2월로 예정되어 있는 FIFA 차기 회장 선거에는 알리 왕자를 포함해 바레인의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 프랑스의 제롬 샹파뉴 전 FIFA 국제국장, UEFA 사무총장인 스위스 출신 지아니 인판티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토쿄 세콸레 FIFA 반인종차별위원회 위원 등 5명으로 줄었든 상황.
현재 FIFA 안팎의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AFC 회장으로서 블래터 회장, 플라티니 회장 모두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셰이크 살만 회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고, 인판티노 사무총장도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알리 왕자는 다소 밀려 있는 형국이다.
이와 같은 상황의 타개를 위해서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어필할 필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알리 왕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역시 월드컵 개최지 선정 비리 의혹에 대한 규명 카드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알리 왕자의 보고서 공개 주장을 바라보는 FIFA의 입장은 어떨까?
물론 한 번 덮은 사안을 다시 꺼내는 일은 모양새가 좋지 않지만 현재 FIFA가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알리 왕자의 제안을 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쩌면 이와 같은 주장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FIFA 윤리위원회는 지난 10월 정몽준 명예부회장에 대해 ‘조사 비협조’, ‘윤리적 태도’ 등의 이유를 들어 6년간 축구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 FIFA 차기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게 만든 데 이어 최근에는 블래터 회장과 플라티니 회장까지 8년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결정, 세계 축구계를 이끌었던 세 명의 지도자를 사실상 국제 축구계에서 퇴출시켰다.
정몽준 명예부회장의 경우 그 동안 블래터 회장 체제 하의 FIFA의 각종 부패와 부조리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판을 가해왔고, FIFA의 개혁을 주장했던 이른바 ‘반블래터파’였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징계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블래터 회장과 그의 후계자로 유력시 되던 플라티니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예상 밖의 조치로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 최근 정몽준 명예부회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FIFA,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제하의 글에서 “FIFA 윤리위의 핵심 인사들은 사실상 블래터의 추천으로 고용된 사람들”이라며 “그동안 FIFA가 스포츠 마케팅 회사 ISL의 뇌물사건, 비자카드와의 부당한 후원사 계약 등 숱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도 윤리위는 수수방관했다. 어쩔 수 없이 조사를 해도 고작 블래터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FIFA 개혁의 대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사권자였던 블래터가 어렵게 되자 그동안 언론에서 수 없이 지적했던 사안들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며 “블래터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괘씸죄로 처리하고, 블래터와 그 측근들에 대해선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면서 가증스러운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역설적인 것은 블래터의 수하에 있으면서 FIFA의 노골적인 부패는 방치하는 한편 나와 같이 블래터 체제에 맞서던 사람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제재하던 FIFA의 윤리위가 뒤늦게 ‘깨끗한 손’인 것처럼 블래터 징계를 운운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도 했다.
이 글에 따른다면 결국 FIFA는 현재 과거와의 결별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FIFA의 몸부림은 충분히 그 배경이 짐작이 된다.
최근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에 의해 밝혀진 FIFA 내부 부패와 비리로 인해 스폰서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림에 따라 FIFA는 14년 만에 재정적 적자에 직면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로서는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과거와 결별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최소한 현재로서는 FIFA가 부패와 비리 근절을 위해 강도 높은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알리 왕자의 월드컵 개최지 선정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조사 보고서 공개 주장도 그 연장선상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그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또 한 번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셈이다. 알리 왕자의 보고서 공개 주장에 대한 FIFA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