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정지' 박태환, 명예회복 무대 꼭 올림픽이어야 하나
국제수영연맹(FINA)이 지난 23일(한국시각) 스위스 로잔서 청문회를 열고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을 함유한 주사를 사용한 박태환(26)에게 18개월간 선수자격을 정지시키는 징계를 내렸다.
FINA의 징계는 금지약물이 검출된 첫 번째 도핑테스트를 받은 9월3일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박태환은 내년 3월2일까지 선수 활동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2년보다 훨씬 짧은 1년 6개월의 징계기간이 결정됨에 따라 박태환의 2016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열리게 됐다.
다만, 박태환이 내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내 규정을 바꿔야 한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1장 5조 6항에는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을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대표 선수 및 지도자 활동을 할 수 없다. 작년 7월15일 규정이 마련된 이후 아직 이 규정을 적용받은 국내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벌써부터 체육계와 법조계로부터 이 규정이 이중징계로서 원천 무효며, 따라서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국제중재 소송팀의 윤원식, 톰 피난스키, 폴 그린 변호사는 24일 공동으로 작성한 서면에서 "체육회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 일부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문건에서 체육회 규정이 '스포츠법의 대법원'이라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무효라고 선언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영국올림픽위원회 규정과 흡사하다고 소개했다.
앞서 IOC는 이른바 '오사카 규칙'에서 '도핑 규정 위반으로 6개월 이상의 징계 처분을 받은 선수는 그 다음 회 올림픽 경기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규정했고, 영국올림픽위원회는 '도핑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정된 자는 올림픽 경기에서 국가대표 자격을 갖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변호사들은 이에 대해, "스포츠중재재판소는 2011∼2012년 두 올림픽위원회의 규칙이 각 무효라고 중재 판정했다"며 "재량권을 내세운 위원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소는 도핑으로 인해 징계를 받는 선수들은 세계도핑방지규약에 따라 국적이나 스포츠 종류와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처분을 받아야 하며, 이중 징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고 전했다.
변호사들은 "체육회 규정은 세계도핑방지규약에서 금지한 이중 징계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세계반도핑기구에 가입한 체육회는 이 규약에 반하는 규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결국 원천무효에 해당하는 체육회 규정은 개정되어야 하고,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주장인 셈이다.
분명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주장이다. 체육계는 여론이 성숙되면 관련 규정의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뭔가 대단히 일사불란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체육회가 법조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규정 개정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박태환의 국가대표 동료였던 김지현은 작년 도핑 양성 반응으로 자격 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담당 의사는 김지현에게 처방한 감기약에 금지 성분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태환이 청문회에 출석했던 23일 김지현은 공군에 입대했다. 국군체육부대에도 수영팀이 있지만 도핑 전력이 문제가 돼 상무 입단이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공군 측은 김지현에게 수영과 관련된 보직을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하늘을 지키는 공군에 수영과 관련된 보직이 어떤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마치 과거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비교체험 극과 극’이 연상된다. 박태환의 도핑이나 김지현의 도핑이나 똑 같은 도핑인데 두 케이스에 대한 주변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분명한 것은 박태환의 도핑은 김지현의 도핑과 비교할 때 죄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로서 부상 치료의 목적이 아닌 건강관리의 목적으로 약물을 투여 받았기 때문이다.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네비도 주사를 맞게 된 이유가 부상 치료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되는 팩트다.
스포츠 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할 일은 오로지 훈련이어야 한다. 훈련 외의 방법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려 했다면 이는 분명 명예를 지키지 못한, 건전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그토록 간절하다면 관련 규정이 원천 무효라 하니 박태환은 내년 3월 이후 국가대표에도 선발되고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박태환이 리우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올림픽 무대가 박태환에게 명예회복의 무대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태환 소속사 팀지엠피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있었던 도핑테스트 관련 사건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팀지엠피는 "먼저 이번 도핑양성반응과 관련 물의를 일으킨 점,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킨 점에 대해 박태환 본인은 물론 소속사에서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입국하는 대로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 번 사과의 입장표명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박태환 스스로 어떤 길이 진정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길인지를 심사숙고할 때다. 스포츠 선수로서 결코 없어야 할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 택해야 할 길이 꼭 올림픽일 필요는 없다.
<본 칼럼은 인터넷 뉴스 '데일리안'에 송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