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도핑 스캔들, 결코 가려질 수 없는 '본질'
검찰이 지난 6일 ‘마린보이’ 박태환에게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을 투여해 체내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게 만든 병원 원장 김모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원장은 지난해 7월 29일 금지약물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함유된 ‘네비도(Nebido)’의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주사를 투여했다.
당시 박태환은 문제의 주사제가 도핑 검사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에 대해 상세히 문의했지만 문제의 병원 원장은 주사제 이름이나 성분,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채 “남성 호르몬은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그걸 보완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 뒤 네비도 주사 4㎖를 투여했다.
이 과정에서 박태환은 네비도 주사제의 약병을 보지도 못했으며 스테로이드 계통 약물이 금지약물인 것은 알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네비도는 남성호르몬의 일종으로 주로 갱년기 치료에 쓰이는 약물인데 네비도에는 근육 강화제 성분인 테스토스테론이 들어있다. 테스토스테론은 WADA 등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주사제의 포장상자와 설명지에 이 같은 사실이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병원 원장은 이를 모르고 박태환에게 주사를 투여했다는 말이다.
'돌팔이'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의사가 아닐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는 과연 국제수영연맹(FINA)의 징계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과거의 사례와 최근 경향을 종합해 볼 때 이번 검찰 수사 결과가 FINA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냉정한 시각이다.
도핑 문제와 관한 한 기본적인 관리 책임이 선수 자신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해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지현은 도핑 양성 반응으로 자격 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담당 의사는 김지현에게 처방한 감기약에 금지 성분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팩트 자체만 놓고 볼 때 박태환의 사안과 김지현의 사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억울할까?
개인적으로는 박태환의 케이스는 김지현의 케이스에 비해 정상참작의 여지가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스포츠 선수로서 부상 치료의 목적이 아닌 건강관리의 목적으로 약물을 투여 받는데 동의했고,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수영 선수가 신체적 능력과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할 일은 오로지 훈련이어야 한다.
박태환은 부상 치료가 아닌 동기로 병원을 찾았다. 이는 분명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이고, 도핑과 같은 부정행위의 위험과 유혹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셈이다.
앞서 검찰 수사 결과에서도 밝혀졌듯 문제의 병원 원장은 주사의 위험성에 대해 묻는 박태환에게 “남성 호르몬은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그걸 보완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박태환은 이 말을 믿은 채 주사를 맞았다.
네비도 주사를 맞게 된 이유가 부상 치료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대목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태환은 선수로서 본분을 망각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의 취재로 박태환 측이 문제의 병원에 도핑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문의했고, 도핑 양성 반응 통보 이후에는 병원 측에 거세게 항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그와 같은 정황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검찰 수사를 통해 박태환의 고의 도핑 의혹은 해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 치료 이외의 목적으로 약물을 받아들였다는 박태환 도핑 사태의 본질은 가려지지 않는다.
오는 27일 스위스 로잔에서는 박태환의 도핑 문제를 다룰 FINA의 청문회가 열린다. 박태환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도핑 문제에 관해 소명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박태환이 징계 자체를 피해갈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지금으로서는 징계 수위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FINA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고의성이 없거나 처음 도핑 검사에 적발됐을 경우 최대 2년까지 자격정지의 징계가 내려지지만 ‘선수에게 중대한 책임이나 과실이 없는 경우’에 한해 징계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결격사유) 6항에는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상황만으로 박태환의 내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물건너 간 셈이다.
이번 사태가 너무나 안타까운 이유는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박태환이 대한수영연맹 등 수영계와 갈등 관계에 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2012 런던올림픽 이후 최근까지 수영계와 체육계는 박태환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다.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해주지 못했고, 세계 정상급 기량을 관리하고 더 향상시킬 수 있는 지도자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도핑 검사와 관련해서 박태환을 포함해 2년간 두 차례나 국가대표 선수들을 징계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물론 박태환이라는 선수가 고분고분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영연맹 수뇌부가 심정적으로 박태환을 미워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괘씸죄'가 박태환에 대한 방치를 불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도핑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제에 직면한 박태환도 억울함 이전에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지만 박태환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 박태환을 방치에 가까운 무관심 속에 내버려 둠으로써 오늘날의 사태를 불러온 수영계와 체육계는 스스로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