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한국 축구, 다시 한 번 ‘증명의 무대’에 서다
2015년 호주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개막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몇 시간 뒤 오만과의 조별예선 첫 경기를 시작으로 아시안컵 우승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한국 축구가 이번 호주 아시안컵을 제패한다면 1960년 대회 이후 55년 만의 우승이다. 그 동안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해 온 한국 축구가 반세기를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안컵 우승이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때문에 그 동안 한국 축구의 모습이 어땠는지에 상관 없이 이번 아시안컵에 쏠린 축구팬들의 관심을 지대할 수 밖에 없다.
작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 당시 감독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은 세계 축구와 한층 벌어진 격차를 확인한 채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예선 탈락 했다.
한국이 벨기에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직후 홍명보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아직 젊다. 미래가 촉망하다. 한국 축구는 발전해야 한다.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은 "우리는 늘 월드컵에서 강한 상대와 싸웠다. 그런데 선수들이 이번에는 기대했던 것만큼 체력 준비를 제대로 못했고 경험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선수들이 증명하지 못했다. 월드컵에 경험 쌓으러 나오는 팀은 없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이끌었던 두 레전드의 발언은 ‘설전’으로 비쳐졌지만 설전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었던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영표 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팬들은 월드컵 무대가 단지 젊은 선수들의 경험 축적의 무대가 아닌 한국 축구의 자존심과 한국 축구의 위상을 증명하는 무대이기를 기대했던 셈이다.
이에 비춰볼 때 아시안컵 무대도 성격상 월드컵 무대와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도 결코 인정하지 않고, 국내에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축구팬들이 믿고 있는 대로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이라는 사실을 이번 대회에서 입증해야 한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랭킹에서 이란(51위), 일본(54위)에 이어 아시아 세 번째에 위치해 있는 순위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표팀이 이뤄야 할 목표는 우승이고, 이를 통해 아시아 최강의 축구대표팀은 한국 대표팀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수 많은 국내 선수들을 발굴하고 테스트한 끝에 유럽을 포함한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을 조합한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했다.
그 엔트리 가운데는 현재 세계 축구계가 주목하고 있는 ‘블루칩’ 손흥민부터 소속팀 감독 조차 ‘만들어가는 선수’로 생각하고 있는 ‘풋내기’ 이정협까지 포함되어 있다.
K리그 최고의 골잡이 이동국, 김신욱도 없고,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맞이한 여러 차례 기회에서 중요한 활약을 펼쳤던 ‘애증의 이름’ 박주영도 대표팀 엔트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슈틸리케 감독은 이 같은 사연 많은 선수단을 이끌고 팬들이 기대하는 그 무엇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슈틸리케호가 이번 호주 아시안컵 무대에서 4강에 오를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할 가능성, 더 나아가 우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능성이 낮다는 말이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스페인의 몰락을 예측해 내는 등 ‘족집게 해설’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영표 해설위원은 최근 AFC 홈페이지를 통해 "2014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에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모든 이가 한국 축구의 새 출발을 생각하고 있다. 아시안컵에 모든 초점이 맞춰있다.”고 아시안컵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언급했다.
이어 "나는 모든 선수가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지난 월드컵보다 훨씬 좋은 대회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몇몇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부끄러워한다. 정신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더 강해지고 자신감을 갖길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의 문제가 단지 체력에만 있지 않았고, 정신적인 면에 문제가 있었음을 거론하면서 현재의 대표팀이 정신적인 면에서 이전에 비해 상당 부분 개선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 결과가 국민들이 보기에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얻었던 결과에 비해서는 훨씬 나을 것이란 전망인 셈이다.
물론 이영표 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단지 몇 달 동안 한국을 이끌었다. 한국은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말이면 지금과 다른 무언가를 보일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여 미리 ‘안전장치’를 걸어뒀지만 어쨌든 이번 아시안컵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임을 예측한 것은 분명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자신이 세워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발전에 대한 구상이 속도와 방향 면에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검증하고 싶을 것이다. 그 결과물은 우승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여전히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가 아시아 축구 최강임을 증명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우승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대표팀이 매 경기 팬들이 납득할 만한 경기를 펼치고, 설령 8강이나 4강에서 탈락한다 하더라도 그 원인이 단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불운’때문이라면 팬들로부터 크게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한국 축구는 단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월드컵에 가장 많이 출전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더 이상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아시아 3등’이라는 현재 위상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증명의 무대에 선 한국 축구가 과연 어떤 결과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