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빼곡한 기록지가 말해 주는 연승 비결 '토털 바스켓'
얼마 전 정은순 ‘KBS N 스포츠’ 여자농구 해설위원과 잠시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때 한국여자농구를 대표한 센터로서 지금은 용인 삼성 블루밍스로 팀명이 바뀐 삼성생명에서 프로선수로서 활약하며 삼성생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한국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정 위원과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2014-2015 시즌 여자프로농구 개막 이후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춘천 우리은행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까지 우리은행은 시즌 개막 이후 9연승을 달리던 상황이었고, 현재 12연승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정 위원은 “내가 뛸 때 삼성생명보다 지금 우리은행이 더 강한 것 같다”며 “우리 때는 멤버가 좋았지만 매 경기 흐름에 따라 팀 전체적으로 플레이에 굴곡이 있었지만 요즘 우리은행의 경기에서는 그런 굴곡을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우리은행이 지난 2003년 삼성성명이 기록한 단일리그 역대 최다 개막 연승 기록(15승)을 무난히 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실제로 정 위원의 전망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정 위원의 전망이나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봐도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지는 것이 이상한 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상한 분석은 지난 11일 우리은행과 청주 KB스타즈의 경기기록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은행은 올 시즌 개막 이후 12연승을 달렸다. 여자프로농구 단일리그 통산 개막 최다 연승이자 팀 자체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이다.
이날 경기에서 우리은행은 나름 KB스타즈와 접전을 펼쳤다. 경기 중간에 리드를 빼앗긴 것도 여러 차례 있었고, 3쿼터까지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KB스타즈에 다소 고전했지만 결국 4쿼터에 펼친 압박 수비로 KB스타즈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며 승리를 추가할 수 있었다.
이날 경기 종합기록지를 살펴보고 기자는 입이 떡 하고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경기 내용은 접전이었지만 결국 이날 경기결과가 우리은행의 승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날 KB스타즈의 기록지가 ‘듬성듬성’했던 반면 우리은행의 기록지는 ‘빼곡’했다. 농구 기록지를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득점과 리바운드 부분 만으로 경기의 내용과 결과가 설명이 됐다.
이날 양팀은 모두 주전과 벤치멤버 포함해 각각 9명의 선수들이 코트를 누볐다. 이들 가운데 득점에 가담한 KB스타즈의 선수는 5명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출전선수 9명 전원이 득점을 기록했다.
‘출전선수 전원득점’. 한 경기에서 한 팀 출전선수 전원이 득점을 기록한 것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야구에서 ‘선발 전원안타’를 주목할 만한 기록으로 인정한다면 농구에서 출전선수 전원득점은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기록이다.
지난 시즌까지 우리은행은 주포 박혜진과 주장 임영희가 득점에서 터져주지 않으면 시종 고전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이승아의 득점력이 부쩍 향상됐고, 외국인 선수 샤데 휴스턴이 매 경기 20득점 안팎을 기록해 줌으로써 득점력 면에서 한층 안정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여기에다 식스맨인 김단비, 박언주, 이은혜도 심심치 않게 고감도 3점포를 작렬시키고, 센터 양지희나 사샤 굿렛도 골밑에서 확률 높은 득점을 꾸준히 올려주고 있다.
야구가 선발타순에 올라오는 선수들이 대부분 한 경기에서 고정적으로 3-5차례의 타격기회를 갖는 반면 농구선수들은 한 경기에서 뛰는 시간이 천차만별이고 코트에 투입되면서 맡게 되는 임무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 리바운드에서는 가담 인원 면에서는 양팀이 대등했다. 하지만 전반전에 우리은행이 KB스타즈에 6개나 뒤졌던 반면 후반전에 압도적인 리바운드 우위로 경기가 끝났을 때 전체 리바운드 개수에서 KB스타즈에 6개를 앞선 부분도 놀라운 대목이다. 결국 후반 2개 쿼터에서 12개의 리바운드 우위를 확보했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우리은행의 경기에 대한 집중력과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 주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우리은행은 이날 ‘토털 바스켓’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우리은행 선수들을 살펴보면 이기겠다는 의지의 절실함보다 결코 지기 싫다는 생각의 절실함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위성우 감독이 경기 중에 만면에 미소를 보여주는, 지난 시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선수들에게 비교적 많은 여유시간을 부여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코트에 들어서는 선수들은 지난 시즌보다 더 절실하게 승리를 향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시즌 연속 꼴찌를 하면서 견디기 힘든 패배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고, 때문에 몸서리 쳐지는 그와 같은 패배의 굴욕감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절실함이 ‘전승우승’ 이야기까지 나오는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사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앞으로 몇 시간 후 리그 유일의 ‘맞수’로 평가 받는 인천 신한은행을 상대로 13연승에 도전한다.
앞서 우리은행은 신한은행과의 2라운드 맞대결에서 16점차 완승을 거뒀다. 인천 원정 경기로 치러진 경기였음에도 이승아의 ‘더블더블’(11득점 12리바운드)를 앞세워 시종일관 신한은행을 압도했다.
우리은행이 당시의 흐름을 이어간다면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연승행진을 저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은행의 토털 바스켓이 이번에도 신한은행을 상대로 빛을 발할지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아킬레스건을 찾아 일격을 가할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