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포스트 김연아’ 탄생의 선결과제
2014-2015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가 1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를 시작으로 대장정에 돌입했다.
한국 피겨계에게 있어 이번 시즌은 새로운 도전의 시즌이다.
김진서가 남자 싱글 부문에서 야심에 찬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여자 싱글 부문에서는 올해 초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피겨여왕’ 김연아가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그 자리를 박소연, 김해진 등 소위 ‘김연아 키즈’ 세대의 선두주자들이 메우는 첫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봉에 박소연이 나섰다.
박소연은 최근 미국 시카고 시어스 센터 아레나에서 열린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쇼트 프로그램 55.74점, 프리 스케이팅 114.69점을 기록, 합계 170.43점으로 종합 5위에 올랐다.
이번 점수는 지난 3월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9위에 오를 때 기록했던 자신의 개인 최고점수 176.61점에 6.18점 못 미치는 점수다.
하지만 이번 대회 결과를 놓고 대부분 국내 언론은 박소연이 김연아 이후 한국 선수로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최고 성적을 거뒀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일부 언론은 이번 대회 프리 스케이팅에서 박소연이 기록한 기술점수(TES)가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음을 지적하면서 박소연이 이미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선수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소연이 ‘포스트 김연아’ 1순위 후보임이 이번 대회를 통해 증명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자면 박소연의 이번 대회 성적은 ‘포스트 김연아’를 논하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 성적이며,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이라는 수식어도 다소 공허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가 워낙 대단한 선수였던 탓도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 박소연이 기록한 성적 역시 정상권의 선수들과 비교할 때 상당한 격차를 나타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스케이트 아메리카의 우승자 옐레나 라디오노바(러시아)는 합계 195.47점을 받았고, 엘리자베스 툭타 마셰바(러시아)가 189.62점으로 2위 그레이시 골드(미국)가 179.3 8점을 기록하며 3위에 입상했다.
박소연과 이번 대회 우승자 라디오노바와는 25점차 이상 점수차가 났고, 3위 골드와 비교해도 10점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다.
‘포스트 김연아’ 후보로 거론되는 두 선수, 즉 박소연과 김해진의 수준 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시즌 박소연과 함께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는 김해진 역시 큰 이변이 없는 한 박소연과 대동소이한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본다면 올 시즌 한국 선수가 그랑프리 시리즈 대회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을 보기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아직 갈 길이 먼 어린 선수들이라는 점을 볼 때 현재의 성적에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김연아가 벅소연과 김해진의 현재 연령인 17세 때 어떤 성적을 냈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박소연은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 스케이팅에서 61.35점으로 11명의 선수 가운데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음을 과시했으나 스케이팅 기술, 예술성 등을 평가하는 프로그램 구성점수(PCS)에서는 54.34점을 받는데 그쳤다.
박소연의 프로그램 구성점수가 기술점수와 같은 레벨의 평가를 받았다면 이번 대회에서 박소연은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
문제는 프로그램 구성점수를 올리는 문제가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깐깐하면서도 한편으로 보면 편견이나 선입견이 강한 국제심판들에게 높은 점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컨셉트의 프로그램으로 심판들이 유지하고 있는 마음의 벽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김연아가 대단한 이유는 세계 피겨계에 그 존재마저 희미했던 한국의 피겨 선수로서 수 많은 편견과 싸워 이겼고, 넘지 못할 것 같았던 벽을 넘어서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수준의 점수까지 받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김연아의 탁월한 표현력은 김연아에게 다른 경쟁자들이 넘겨다 보지 못할 수준의 프로그램구성점수를 안겼고, 그것이 김연아를 세계 피겨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불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소연 역시 이번 시즌을 앞두고 지난 5월 김연아의 안무를 전담했던 데이비드 윌슨과 일찌감치 새 프로그램 안무를 완성했고 ‘우상’ 김연아로부터 조언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예상 밖의 빈약한 프로그램 구성점수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국내 피겨팬들은 박소연에 대한 심판진의 프로그램 구성점수 채점이 지나치게 인색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그런 불만이 결과를 바꿔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박소연이나 김해진이 진정한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프로그램 구성점수를 높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선수 모두 심판들에게 낯선 선수가 아닌 익숙하고 친숙한 선수가 될 필요가 있다.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를 무난하게 마친 박소연은 다음달 14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4차 대회 ‘로스텔레콤컵’에 출전한다. 김해진은 2차 ‘스케이트 캐나다’와 3차 ‘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한다.
두 선수 모두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국가 선수들과 비교할 때 결코 밀리지 않는 만큼 프로그램 구성점수만 받쳐준다면 메달도 바라볼 수 있다.
열 일곱 살 동갑나기 유망주 박소연, 김해진이 ‘포스트 김연아’ 탄생의 선결과제로 떠오른 ‘프로그램 구성점수 높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