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의 예언' 무적함대 스페인의 몰락 시작됐나
‘무적함대’ 스페인이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십자포화에 박살이 났다. 그냥 ‘박살’이라는 표현도 부족하고 속된 말로 ‘X박살’이 났다.
네덜란드는 14일 새벽(한국시각) 브라질 사우바도르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로빈 판 페르시와 아르연 로벤이 4골을 합작, 스페인에 5-1 대역전승을 거뒀다.
네덜란드는 전반 26분 스페인의 디에고 코스타에게 페널티 박스 안에서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키커로 나선 사비 알론소의 페널티킥을 막아내지 못해 먼저 실점했다.
스페인이 승리의 예감에 들떠 있던 순간 네덜란드의 엄청난 반격이 시작됐다.
전반 44분 블린트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얼리 크로스를 수비 뒷공간을 파고 들던 판 페르시가 몸을 날리며 다이빙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고, 판 페르시가 헤딩한 공은 스페인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아스의 키를 넘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카시야스의 월드컵 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도 477분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렇게 1-1 동점으로 전반을 마무리한 네덜란드는 후반 8분 로벤이 블린트의 크로스를 정교한 퍼스트 터치로 받아낸 뒤 달려드는 스페인 수비수를 모두 제친 뒤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기세가 오른 네덜란드는 후반 19분 왼쪽 측면에서 올린 스네이더의 프리킥을 수비수 데 브리가 스페인 골문 오른쪽 구석에서 헤딩 슈팅을 시도, 네덜란드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스페인으로서는 골키퍼 카시야스가 공의 낙하지점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네덜란드 공격수와 신체접촉이 일어나면서 골문을 무인지경으로 만든 부분이 아쉬웠다.
스코어가 두 골차로 벌어지자 스페인의 플레이는 점점 무너져 갔고, 골키퍼 카시야스 결정적인 실책까지 이어지면서 악몽과도 같은 네 번째 골을 허용했다.
후반 27분 카시야스가 백패스로 자신에게 온 공을 잡아 놓는 과정에서 볼 컨트롤이 다소 길게 됐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판 페르시가 공을 빼앗아 골로 연결시켰다. 스코어는 4-1, 경기는 더 이상 반전의 여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로부터 9분 뒤 네덜란드는 하프라인부터 시작된 로벤의 드리블 돌파에 이은 완벽한 추가골로 5-1까지 달아났다. 그렇게 경기는 5-1, 네덜란드의 완벽한 설욕으로 마무리됐다.
네덜란드가 4년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당한 통한의 패배를 확실하게 되갚아주며 2014 브라질월드컵 첫 판을 그야말로 위대한 승리로 장식했다.
이날 스페인의 대패는 FIFA에서 언급했듯, 가히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패인은 골키퍼 카시야스를 포함한 수비진의 붕괴가 첫 번째 원인이 되겠지만 단 한 골의 필드골도 없었던 공격의 실패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날 스페인은 이니에스타, 사비, 실바 등 남아공월드컵 우승을 이끈 특급 미드필더들의 존재는 그대로였지만 특유의 ‘제로톱’ 대신 최전방에 코스타를 배치하는 포메이션을 구사했다.
제로톱은 기본적으로 최전방 공격수를 두지 않는 상태에서 문전으로 진입하는 선수가 누구든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는 ‘4-6-0’ 포메이션으로 미드필드 숫자를 늘려 상대와의 중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가운데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침투로 상대 문전을 공략하는 전술이다.
스페인은 특유의 숏패스 위주의 ‘티키타카’를 앞세운 점유율의 축구와 제로톱 전술을 통해 남아공월드컵과 유로를 제패했다.
하지만 이날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프리메라 정상으로 이끈 특급 스트라이커 코스타를 원톱으로 기용, 그 뒤를 이니에스타와 실바가 받치게 하는 전형을 구사했다.
하지만 코스타의 페널티킥 첫 골이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코스타의 존재가 위협적이지 않았고, 경기 내내 스페인의 전방 압박이나 쉴새 없는 문전 공략도 이전의 그것과 같은 예리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코스타의 몸 상태, 경기감각 모두가 문제로 보였다. 스페인에게 새로운 득점원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타의 존재가 오히려 스페인의 공격을 무디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이제 스페인은 예선탈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호주를 3-1로 잡은 칠레가 다음 상대라는 점도 스페인으로서는 불운이다. 스페인을 만난 칠레가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전한 경기운영을 펼친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승부 정도의 결과를 얻게 된다면 골득실에서 불리한 스페인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은 지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벼랑 끝 위기에 직면해 있다.
스페인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무적함대의 위용을 되찾을 지, 아니면 끝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인지 칠레와의 2차전에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최근 KBS의 월드컵 프리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스페인의 몰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은 이번 브라질월드컵 기간 내내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