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선거판 얼굴마담 노릇 언제까지
스포츠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스포츠 팬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선거철만 되면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들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거판에 스포츠인들이 들러리를 서는 장면이다.
스포츠와 스포츠인들이 정치판의 들러리를 서는 형태는 직접 선거에 출마하거나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의 병풍 노릇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전자의 경우는 스포츠 스타들의 인지도를 활용해 표를 좀 얻어보겠다는 정당들의 계산에 놀아나는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정당과 정치인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전자의 실례를 살펴보자면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결승 만루홈런의 주인공으로 야구팬들의 뇌리게 강한 인상을 남긴바 있는 김유동 씨는 지난 15대 총선부터 17대 총선까지 출사표를 던졌으나 모두 실패했고, 천하장사 출신 이봉걸 씨도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의회 서구2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역시 낙마했다. 또한 천하장사 최다 우승자 출신인 이만기 인제대 교수도 17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최근에는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기도 한 문대성이 여당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논문표절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탈당과 복당을 오가며 볼썽 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후자의 실례를 살펴보면 대표적 인물이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있는 정몽준 씨다.
그는 지난 2008년 서울 동작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당시 스포츠계 유명인들을 선거유세장에 동원해 빈축을 샀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었던 정몽준 씨는 2008년 3월 30일 동작구 사당동의 한 백화점 앞에서 행한 선거유세장에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인 황선홍, 안정환을 비롯해 김정남(당시 울산현대 감독), 프로농구의 허재 감독(당시 전주KCC 감독) 등이 참석, 정몽준 후보의 소개로 연단에 올라 현장에 있던 500여명 유권자들 앞에서 손을 흔들며 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유세장에는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과 김주성 축구협회 국제부장도 참석했다.
시점상으로 보자면 김정남 감독, 황선홍 감독, 안정환은 모두 최근 개막한 프로축구 K리그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허재 감독도 전주KCC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상황이라 조만간 4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각자 속해있는 구단들이 모두 현대 계열사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세장에 어떤 배경으로 나오게 됐는지 짐작이 됐다.
하지만 당시 축구협회 임원까지 유세장에 나타난 것은 FIFA 행동규정 위반 혐의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FIFA의 행동규정에는 ‘FIFA 임원이 개인적인 목적과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몽준씨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도 예외 없이 스포츠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황당하다. 서울시장에 출마했는데 공약이 이미 개최지가 카타르로 결정된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겠다는 것.
정 후보는 2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강남역 유세 현장에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국 선정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개최국 재선정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과 자신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이뤄낸 것을 언급하면서 "카타르가 유치과정에서 뇌물 등 부정한 돈을 수백만불이나 쓴 것이 보도되면서 2022년 개최지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며 "2002년 월드컵을 일본과 같이 했는데 요즘 일본 사람 너무 심하지 않냐. 2002년에는 절반밖에 못했으니 2022년은 우리나라가 전부 다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카타르의 월드컵 유치가 취소되면 한국이 그 대회를 가져올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말인데 그 실현 가능성을 차치하고라도 이게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인지 대한축구협회장 후보의 공약인지 알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의 행태를 미루어 보면 결국 정몽준이라는 사람에게 축구와 축구인은 그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성취하는 데 이용할 도구에 불과한 셈이다.
같은 날 페이스북에는 재미있는 사진 한 컷이 올라왔다. 붉은색 새누리당 티셔츠를 입은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대한민국 국민을 믿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과 함께 김재원 의원은 “컬링국가대표팀과 함께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이다. 딱 감이 오지 않는가? 결국 그는 컬링연맹 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을 정치광고의 모델로 유용한 셈이다.
최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각종 기관·단체의 이사장과 회장을 맡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해 '겸직불가'라고 판단하고 이를 일괄 통보했다. 당연히 컬링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원 의원에게도 이 같은 사실이 통보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 의원이 아직 명목상 컬링연맹회장의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컬링연맹이나 컬링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 같은 도리를 져버리고 컬링 국가대표선수들을 여당의 선거운동원 내지 정치광고 모델로 이용했다.
김 의원은 법조인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으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여야를 떠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매사 법조인으로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는 언행을 이어 왔다는 점을 떠올려 볼 때 컬링연맹 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들러리 세운 행동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쌍팔년도식 정(치)-체(육) 유착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 같은 ‘정체유착’도 이제 선거판과 정치판에서 없어져야 할 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