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골로 승점 4점' 억세게 운좋은 QPR? 갈 길은 여전히 멀다
2012년의 마지막 날 퀸즈파크 레인저스(QPR)가 리버풀과의 2012-201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 경기에서 0-3의 완패를 당했을 때 이제 QPR의 강등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여겼던 전문가들이 많았다.
EPL 무대에서 시즌 20라운드까지 승점 10점에 머무른 팀이 EPL에 잔류했던 역사가 없음이 가장 큰 근거였지만 QPR이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상대해야 할 팀들의 면면을 볼 때 최소한 QPR이 승리는 고사하고 승점을 챙길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버풀전 완패 이후 두 라운드의 리그 일정이 소화되고 있는 가운데 QPR은 첼시, 토트넘을 상대로 1승1무 승점 4점을 챙겼다. 당초 전문가들은 QPR이 첼시, 토트넘을 상대로 몇 점의 승점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희망적으로 봐도 기껏해야 승점 2점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전망이었다면 아마도 승점 ‘제로(0)’를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12일 밤(한국시간) 홈구장인 로프터스로드에서 ‘전 주장’ 박지성이 선발 출장한 가운데 토트넘을 상대한 홈팀 QPR은 가뭄에 콩 나듯 한 차례씩 파상공세를 펼쳤지만 전반적으로 토트넘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했다.
골키퍼 세자르의 기막힌 수퍼세이브 행진이 없었다면 맥없이 패수를 하나 더 늘렸을 테지만 세자르 골키퍼의 신들린 듯 한 선방과 경기 막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수비진들 덕분에 QPR은 데포, 아데바요르, 레넌, 베리 등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토트넘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지난 첼시전(1-0 승리)에 이어 두 경기 연속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승점을 나눠 갖는 데 성공했다.
만약 이날 19위 레딩이 웨스트브롬위치 알비온에게 패했다면 QPR은 탈꼴찌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레딩이 승리함에 따라 QPR은 레딩에 승점 2점이 뒤진채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EPL 잔류 커트라인에 걸려있는 위건이나 18위 아스톤빌라와의 승점차는 5점차로 유지가 됐다.
올 시즌 EPL 경기가 16경기나 남아 있고, 강등경쟁을 펼치는 상위팀들과의 승점차가 2-5점 정도 범위라면 시즌 일정이 모두 마무리가 됐을 때 어느 팀이 강등의 비운을 맛보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QPR이 다음 주말 있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길 수 있다면 더더욱 강등팀에 대한 불확실성을 커질 수 있다.
이처럼 챔피언십(2부 리그) 강등이 기정사실처럼 보였던 두 경기 전 상황과 비교할 때 QPR이 현재 가진 희망의 크기는 분명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숫자놀음 만을 가지고는 결코 EPL 잔류라는 지상 과제를 풀어내기 어렵다.
특히 현재 QPR이 안고 있는 위험요소들이 해소되거나 개선되지 않는 한 QPR의 위치는 시즌 막판까지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QPR이 현재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역시 공격력의 부재 내지 비효율성이다.
시세, 자모라 등 기존 스트라이커들의 무력함은 이 한 줄로 갈음해도 될 듯 하다.
문제는 다른 공격수들이다.
풀럼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따낼 때 혼자 두 골을 터뜨리며 영이 됐던 타랍은 점점 간간이 창의적인 킬 패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내지만 전반적으로 혼자 공을 끄는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고 패스 성공률도 떨어지고 있어 팀 전체의 공격 흐름을 번번이 끊어 놓고 있다.
최근 들어 저돌적이고 헌신적인 공격수로 몸을 사리지 않는 ‘남성적 축구’ 내지 ‘영국 축구’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마키는 그러나 그와 같은 ‘남성적 축구’ 내지 ‘영국 축구’의 한계랄 수 있는 세밀함과 테크닉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지난 첼시전의 영웅인 숀 라이트-필립스는 이번 토트넘전에서도 몇 차례 기막힌 볼 컨트롤과 빠른 드리블로 ‘왕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문전에서 냉정함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번득였던 과정에 비해 한없이 허무한 골결정력을 보여줬다.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박지성의 폼도 불만족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박지성의 발에서 나가는 패스의 성격이 공격적이지 못하고 수비적이거나 밸런스 유지를 위한 패스들이 많다 보니 박지성은 더 이상 과거 ‘습격자’로 불리던 그 시절의 위협을 상대 선수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허술한 공격진으로 첼시와 토트넘을 상대로 단 한 골 만을 넣고도 승점 4점을 챙겼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 역시 골키퍼 세자르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 QPR은 수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낼 위기를 맞고 있다. 팀의 주축 중앙수비수 넬슨이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축구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수비라인에 구멍이 생기게 될 상황에 놓인 것.
넬슨의 이적에 관해 구단 간의 합의는 끝난 상황이지만 아직 정확한 팀 합류시기가 정해지지 않아 넬슨은 지난 토트넘전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QPR의 입장에서 지금 넬슨이 그라운드에 있다고 하여 ‘있는 사람’ 취급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겨울이적시즌 동안 외부 선수 영입을 통해 공수에 걸친 비효율성 내지 공백감을 메워야 하는 것이 QPR의 당면 과제다.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 가운데 강등이 유력해 보이는 팀에 이적해 올 마음을 먹을 만한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마는 어쨌든 해리 레드냅 감독은 현재 백방으로 선수를 수소문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대로 아직까지는 ‘생각해보겠다’는 답변보다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시즌 아우크스부르크가 구자철을 임대 영입하면서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하면서 1부 리그 잔류를 성공시켰던 것처럼 QPR에게도 전체적인 팀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2-3명 정도의 선수만 보강된다면 강등권 탈출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스토크시티 이적설이 나돌고 있는 이청용 같은 선수가 QPR에 온다면 분명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청용 스스로나 볼튼 원더러스 구단 입장에서 이청용의 완전 이적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QPR의 입장에서는 임대의 형식도 적극 고려할 만하다.
앞서도 언급했듯 첼시와 토트넘을 상대로 단 한 골 만을 넣고도 승점 4점을 챙긴 QPR은 억세게 운이 좋았다. 운도 실력이라고 하지만 QPR의 행운은 어딘지 불안하다. 행운을 궁극의 행복 내지 기쁨으로 연결짓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과제해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