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여신들'에 대한 선정적 보도, 언론사 만의 책임인가
아래 소개하는 글은 한 스포츠전문채널 남성 아나운서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지나치다 싶습니다.
저희 여자 아나운서의 사진과 함께 ‘귀여운 뱃살’ 이란 제목의 기사가 야구 메인 페이지에 걸려 있네요.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분명 공인일 것입니다.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없이 도틀어 질 수 밖에 없는 직업이죠. 특히 여자 아나운서는 더욱이 그런 직업입니다.
그런데 거의 매일 여자 아나운서와 관련한 정말 민망한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것들을 기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기사들을 말입니다.
물론 그런 기사를 올리는 포탈과 매체의 수준, 그리고 기자의 기자정신도 문제입니다. 그보다 먼저 이런 종류의 기사를 소비하는 일반 대중이 있다고 누군가 얘기 하겠죠. 맞습니다. 그런 일반 대중의 관심은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고맙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 대한 가십성 기사와 옐로우 저널리즘적 기사들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 대부분의 여자 아나운서들은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 완벽한 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단 5분짜리 리포트를 위해서 밤을 새는 그들의 직업의식이 그들이 입은 옷과 헤어스타일, 적어도 뱃살 보다는 더 높게 평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스포츠 기사를 탐독하는 독자라면 대략 어느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에 관한 기사에서 비롯된 글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는 현재 40개에 가까운 다양한 내용의 댓글이 달려있다. 글을 쓴 남성 아나운서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도 많지만 최근 여성 캐스터들의 미모와 몸매를 앞세워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스포츠채널들의 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도 보인다.
스포츠 채널 여성 아나운서들의 선정성 문제는 최근 프로야구가 큰 인기를 끌면서 프로야구를 중계하고, 프로야구 중계가 끝나면 하루의 프로야구 소식을 정리해 보여주는 ‘매거진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4개의 채널(MBC스포츠플러스, KBS N 스포츠, SBS ESPN, XTM)들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미모의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을 내세우는 것으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면서 상당수의 스포츠 팬들로부터 지적 받아 온 문제였다.
한 마디로 ‘여성 아나운서들의 스커트 길이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주요 스포츠 채널들의 프로야구 매거진 프로그램 진행자 가운데 남성 아나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는 모두 남성 아나운서지만 어찌된 일인지 매거진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리는 모든 채널들이 하나같이 여성 아나운서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여성 아나운서들은 단순히 프로그램 진행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이나 스프링캠프 등지에서 취재와 리포트도 하고, 로고송 녹음이라든지 이벤트 타이틀 영상 촬영 등 프로야구 방송 마스코트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여성 아나운서가 혜성처럼 등장, 야구 프로그램의 여성 아나운서들을 모두 제치고 연일 포털 사이트 전면을 자신의 사진으로 장식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여신’이나 ‘요정’ 같은 타이틀이 붙기 마련이고, 이들이 입은 옷이나 몸매, 미모 등은 좋은 보도의 소재가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이 방송 중 입는 옷들이 대부분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미니원피스 등 방송 성격에 비해 노출이 심한 옷들이다 보니 이들이 약간 과감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방송을 한 다음날은 어김없이 주요 포털 사이트에 ‘숨막히는 각선미’, ‘아찔한 몸매’, ‘착시의상 논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주요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남성 아나운서를 격분케 한 문제의 사진기사도 그와 같은 보도 행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보도였던 셈이다.
물론 그와 같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십성 사진 기사는 누가 봐도 그 일차적인 책임이 해당 언론사에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런 기사를 ‘클릭 욕심’에 다른 수많은 주옥 같은 기사들을 뒤로 한 채 야구 섹션 메인 페이지에 걸어 놓은 포털 사이트 측 책임도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여성 아나운서들의 스커트 길이로 시청률을 잡아보려는 스포츠채널들의 비뚤어진 욕심이 근본적인 원인 제공을 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과정에서 이들을 화면에 담는 카메라의 각도는 참으로 절묘하다. 무릎 위로 한껏 올라온 여성 아나운서들의 미니원피스 맵시를 도드라지게 보여주거나 여성 아나운서들의 각선미가 최대한 부각되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렇다면 글을 올린 남성 아나운서는 뭔가 하나를 빼먹었거나 중요한 현실에 애써 눈을 감은 채 글을 쓴 것은 아닐까?
물론 방송사에 소속된 월급쟁이 아나운서로서 다분히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만을 글로 옮긴 남성 아나운서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선정성 논란은 방송사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매주 일요일 밤 KBS 1TV에서 방영되는 스포츠 매거진 프로그램 ‘스포츠 이야기-운동화’의 진행자는 프라임 타임 뉴스 앵커 출신의 유명 아나운서인 정세진 아나운서다.
정세진 아나운서가 ‘운동화’ 스튜디오 녹화에서 입는 의상은 주로 차분한 바지에 캐주얼한 상의 차림이다. 다른 방송 때 미니 스커트를 입는 경우도 있지만 선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단정한 오피스룩 그 이상을 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시청자로서 오롯이 스포츠계의 다양한 소식에 눈과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이 진행자 정세진 아나운서의 차림새부터 조성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입는 의상을 제 멋대로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한다면 언론들의 저급한 옐로우 저널리즘을 문제 삼기 전에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스커트 마케팅’ 논란부터 ‘성상품화’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스포츠채널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사의 얼굴이랄 수 있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어느 술집에 걸려 있는 주류회사의 달력 속에 반라의 상태로 야릇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 이름도 알 수 없는 여성 모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비쳐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