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나니가 미쳐야 스페인 잡는다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적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는 28일 새벽(한국시간)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아레나에서 열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로 2012 준결승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팀으로 현존하는 세계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고 있는 스페인 대신 포르투갈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은 이번 유로 2012에서 ‘제로톱’이라는 전술을 들고 나와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다비드 비야의 부상 공백으로 비롯된 제로톱 전형은 스페인이 처음으로 들고 나온 전술은 아니지만 ‘패스 마스터’들이 즐비하고 모든 선수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골 결정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역대 어느 팀이 구사했던 제로톱보다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포르투갈의 전력은 그야말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루이스 나니 콤비의 ‘양날 비수’에 좌우된다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독일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을 잡을 수 있는 팀으로 꼽는 팀이 바로 포르투갈인 이유이기도 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어느 쪽이 이겨도 특별하게 기분 좋을 일 없는 입장에서 포르투갈을 심정적으로 응원하면서 이 경기를 즐기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다면 호날두와 나니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호날두-나니 콤비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조별예선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양팀이 1-1로 맞서 있던 상황에서 전광석화 같은 역습 상황에서 나니-호날두 콤비가 만들어낸 결승골 장면은 포르투갈이 스페인전에서 만들어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기에서 나니가 공을 몰고 네덜란드의 오른쪽 측면을 빠르게 침투한 뒤 반대편에서 ‘폭풍질주’중이던 호날두에게 자로 잰 듯 절묘한 크로스를 연결, 이를 호날두가 받아 침착하게 오른발로 차 넣은 장면은 당시 중계카메라에 잡힌 네덜란드 관중들의 허무한 표정에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을 앞두고 있는 스페인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스페인을 상대로 이와 같은 장면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에게 호날두에 대한 ‘총력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호날두를 봉쇄하는 데 성공하면서 1-0 승리를 거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따라서 스페인으로서는 호날두 봉쇄 성공이 결국 결승행의 관건인 셈이다.
스페인의 델 보스케 감독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그는 “그(호날두)의 플레이를 막아야 한다. 우리는 남아공월드컵에서 경기 내내 호날두를 집중적으로 수비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내일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호날두를 막을 선수가 그때(남아공월드컵)와는 다르겠지만 방법은 같다”고 호날두 봉쇄를 필승카드로 제시했다.
물론 호날두 정도의 클래스의 선수는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의 플레이를 펼친다는 사실을 스페인의 선수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집중 마크를 하는 이상 호날두가 최소한 활개를 치는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스페인을 상대하는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나니의 비중이 커질 필요가 있다. 사실상 나니가 미치지 않고서는 스페인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 사람들은 나니가 어느 정도 호날두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나니는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호날두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기막힌 활약을 펼쳤던 것도 사실이다.
현란한 발놀림에 폭발적인 스피드, 거기에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대포알 슈팅까지…나니가 미치면 어떤 상대로 경기를 펼치든 승리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을 그는 소속팀인 맨유에서 여러 차례 보여줬다.
문제는 나니의 플레이가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그가 맨유에서 방출될 것이라는 보도에 시달렸던 이유도 기복이 심한 플레이 때문이었다. 이번 유로 2012에서도 나니는 매 경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포르투갈이 치른 네덜란드전과 체코전에서 나니는 분명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 부분이 희망적이다.
나니가 호날두 봉쇄를 천명한 스페인 대표팀의 뒤통수를 멋지게 강타하며 특유의 덤블링 세리머니를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