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승부조작 파문, 결국 선수들만 잡았다
국내 프로스포츠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승부조작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시발점이 됐던 K리그 승부조작 파문으로 인해 벌써 3명의 전현직 K리그 구성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영구히 유니폼을 입지 못하게 됐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정종관, 전 상주상무 이수철 감독, 그리고 대전시티즌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된사실이 수원블루윙즈로 이적한 이후 밝혀져 최근 목숨을 끊은 이경환까지…
일각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다 갑작스레 목숨을 끊은 골키퍼 윤기원도 승부조작 때문에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수사결과 정확한 정황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그에게는 최소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싶다.
승부조작이라는 스포츠 세계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범죄행위가 자행된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 없이 행동의 당사자들이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삶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이어지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렇듯 사람이 하나 둘씩 죽어 나가고 수많은 선수들이 영구제명되어 다시는 축구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설 수 없게 되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는 일이 이어지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결국 선수들만 잡았다’는 생각이다.
여러 언론 보도에서도 드러났듯 축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목의 프로스포츠에서 승부조작 내지 경기내용조작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대한 차단 내지 운영진 처벌에 관한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취재해서 르포 형식으로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고 소위 ‘브로커’라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할 만큼 불법 도박사이트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와 수사기관들은 문제의 사이트들이 서버를 외국에다 두고 있으면서 은밀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는 ‘현실론’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승부조작 내지 경기내용 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은 그야말로 꼭두각시 인형과 같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 움직여지는 플레이를 하게 되는 동기는 돈이 될 수도 있고, 폭력조직의 협박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들은 그저 불법 스포츠 도박을 위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불법 스포츠 도박의 ‘몸통’을 제거하지 않고서 승부조작 근절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답은 명료하다.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부와 수사기관은 국제공조를 통해서라도 이 같은 불법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 내지 차단작전에 나서야 하지만 현재 이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그저 신고를 기다릴 뿐이다.
필자도 지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기간 중 묘한 제의를 받은 바 있다. 월드컵 경기를 특정 사이트에서 문자로 중계하는데 채팅으로 해설을 해달라는 제의였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이름도 인적사항도 사이트의 URL이나 명칭도 보내지 않았고, 그저 메일로 참여의사를 밝히면 추후에 따로 연락을 주겠다고만 메일에 적고 있었다.
필자는 재미있는 경험이겠다 싶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메일에 적어 보냈지만 곧바로 이런 저런 사이트에서 칼럼을 써 달라는 제의가 들어와 채팅중계를 포기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후 필자에게 채팅 해설을 제의한 사이트 담당자는 더 이상 연락을 주지 않았다.
승부조작 파문이 일어나고 이런저런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운영실태를 알게 되면서 필자는 그 제의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제의였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도 K리그나 프로야구 문자중계 페이지에는 수많은 정체불명의 사이트들의 URL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곤 한다. 그 분만 아니라 필자의 메일 주소로도 심심치 않게 사설 스포츠 배팅사이트의 홍보성 메일이 들어온다.
이 같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정부나 수사기관, 정보기관들이 이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들에 대한 단호한 척결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승부조작의 몸통들은 날마다 새 옷을 갈아입으며 스포츠의 본질을 흐리고 선수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음에도 승부조작의 ‘포주’와도 같은 브로커들의 세치 혀에 의지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승부조작의 늪에 빠져 피를 빨린 선수들의 손과 발을 묶고 그들을 사지로 모는 결과 만을 실적인양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우리 정부와 수사-정보기관은 지금이라도 불법스포츠 도박사이트 척결을 위한 실질적이고 특단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한 각종 프로스포츠 단체는 선수들을 그라운드 밖으로 몰아내고 파문을 덮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이들이 다시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재탄생 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 함께 나서줘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헛된 죽음이 나오면 안 된다. 하지만 ‘몸통’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헛된 죽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한 그들의 죽음에 있어 축구계와 K리그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 전체는 언제까지나 공범일 수 밖에 없다.